화순 능주권역 민주ㆍ인권 투어 필수 코스로 떠올라

기사입력 2020.03.30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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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 조광조 유배지에 홍남순 변호사ㆍ이한열 열사 생가 등으로 이어져

국내외 청소년들의 민주ㆍ인권 투어 코스 '급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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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순 능주권역 관광지가 민주ㆍ인권 투어 코스로 급부상되고 있어 관심이다.

능주권역은 정암 조광조 선생 유배지에 민주열사 이한열 생가가 바로 코 앞에 위치해 있고, 3km 지점에 홍남순 변호사 생가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대쪽 같은 올곧은 성품으로 조정에 직언을 서슴치 않아 당시 중종 때 기득권자들의 모함으로 능주에 유배왔다가 25일만에 사약을 받고 최후를 맞은 곳이 조광조 선생 유배지다.

그의 친구이자 정암의 시신을 거둬 장례를 치룬 양팽손(호는 학포)의 우정과 학문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그 유배지에서 바로 코앞 50m 지점에 민주열사 이한열의 생가가 자리잡고 있다.

이한열 열사는 1966년 8월 29일 아버지 이병섭씨와 어머니 배은심씨 사이에 누나 셋에 이어 첫 아들로 이 곳 능주면 남정리 225번지에서 태어났다. 

5살 때인 1970년 광주 동구 지산동으로 이사해 동산초교와 동성중-진흥고를 거쳐 연세대 경영학과에 들어갔다. 

운명의 1987년 6월 9일 민주화를 위해 시위대 맨 앞줄에 나섰지만 직선으로 날아온 최루탄이 그의 뒷머리를 때렸다.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7월 5일 새벽 2시 5분. 향년 22세. 나흘 뒤 운구차가 장지인 광주로 향하는 길에는 160만 국민이 함께했다. 

군부독재와 민주주의의 탄압에 전국민이 울면서 분노했다. 그해 6월 29일 마침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다. 기나긴 민주화의 투쟁이 막을 내렸다. 이후 33년이 흘렀다.

화순 능주면은 최근 최영미 면장이 앞장서 초라한 그의 생가 주변을 정리하고 몇송이 봄 꽃을 심은 뒤 그의 투철한 민주화 정신을 기렸다. 

능주면이 민주화와 인권운동 투어 필수 코스로 떠오르고 있는 점은 인근에 '시대의 의인' 홍남순 변호사 생가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

평생을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던 화순 출신 홍남순 변호사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이 지역 민주화의 큰 어른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때문에 화순 능주권역이 '코로나19' 여파가 가라않을 경우 국내외 청소년들이 찾는 민주ㆍ인권 투어 코스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광주리포트 www.gjreport.co.kr 

[gjreport@hanmail.net gjrepor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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